을지부대??

┣Information 2008. 2. 7. 22:57
체감온도 영하 30도 맹추위 속에서 철통 경계
제설작전 나서면 양쪽으로 2m 눈벽이 우뚝
[일간스포츠] 2007-12-27 오후 1:26:22 입력 / 2007-12-27 오후 2:01:39 수정

지프차가 흔들거린다. 겨우 차 한 대가 빠져나갈 수 있는 꾸불꾸불한 산길(전술도로)을 오른 지 벌써 30분. 해발 고도는 1100m를 넘어서고 있다.

다시 그곳에서 10분 정도를 더 가니 갑자기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고도가 1150m를 넘어서면서 상고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키 작은 나무에 달라붙은 얼음 알갱이들이 추위를 짐작케 한다. 지프차는 힘겹다는 듯 엔진 소리를 거칠게 토하며 20분을 더 올라갔다.

드디어 막사가 보인다. 강원도 인제·고성에 위치한 1293m의 향로봉, 우리나라에서 최고 높은 곳에 위치한 부대가 있다. 이곳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향로봉중대원들을 만났다.

향로봉(강원 고성)=글 이방현 기자 [ataraxia@ilgan.co.kr]
사진 양광삼 기자 [yks01@jesnews.co.kr]
 
■몸을 얼게 만드는 체감온도 영하 49도
 
기자가 찾아간 날은 크리스마스 전 주. 예년에 비해 포근한 날씨였다. 오후 2시인데도 부대의 온도계는 영하 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체감온도는 영하 14~15도. 막사에서 난로로 몸을 약간 녹인 후 정상에 위치한 초소로 향했다.

초소 밑 헬기장. 잠깐 서 있기도 힘들다. 초속 13m로 불어 대는 바람에 몸을 가누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상고대의 얼음 알갱이가 바람에 실려와 얼굴을 때린다. 따끔하다. 바람에 밀려 뒷걸음질 친다. 발에 잔뜩 힘을 주고 재빨리 초소로 들어갔다.
 
이곳의 날씨는 보통 영하 10~20도, 체감온도는 영하 30도라고 한다. 최고로 기온이 떨어졌을 때는 영하 26도에 체감온도 영하 49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

체감온도 영하 15도에도 이렇게 손끝이 저려오는데…. “한여름에도 영상 15도를 넘지 못합니다. 야전 상의를 걸쳐 입을 정도입니다.” 조광희 병장의 말이다. “밤에 근무를 서면 훨씬 춥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만큼 보람도 큽니다.” 조동선 일병은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날씨 덕분에 인내심을 키우고 있다고 말한다.

 
■잔뜩 긴장하게 만드는 눈앞의 북녘땅
 
초소에 들어가니 눈앞에 북녘땅이 보인다. 날씨가 흐려 철책은 보이지 않지만 맑은 날에는 또렷하게 군사분계선을 내려다볼 수 있다고 한다.

“적의 산악 침투식 공격을 막는 것이 향로봉중대의 임무”라고 말하는 옥덕기 중대장(대위)은 “거점 선점의 임무를 맡아 어떤 일이 있더라도 향로봉을 사수할 것입니다”라며 최정예 산악부대원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래서 향로봉중대가 속한 12사단은 병사를 용사라고 칭한다.
 
향로봉은 금강산 1만 2000봉우리 중 하나로 군사적 의미가 크다. 원래 향로봉의 높이는 1297m였는데, 한국전쟁 당시 집중된 포격으로 4m나 무너져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만큼 전술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이준경 일병은 “이곳에 서면 북이 멀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맡고 있는 임무가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싸워야 할 또 다른 적, 눈과 바람
 
향로봉중대가 싸워야 하는 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눈과 바람이다. 그래서 눈을 치우는 작업은 ‘제설작전’이 된다. 쌓인 눈을 치우고 또 치우다 보면 전술도로에 눈벽이 생긴다.

길 양쪽에 1.8~2m에 이르는 눈벽은 차가 미끄러져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방호벽 구실도 한다. 하지만 바람이 거세면 눈벽이 허물어져 제설작전을 또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주기도 한다.
 
“전술도로상의 제설작전은 조금만 방심해도 사고가 납니다. 반대편에서 무전으로 연락을 취하면서 진행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죠.” 옥 중대장은 중대원들을 무사히 부모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눈이 올 때면 호랑이로 변한다. 이 매서움은 또한 부대원들의 정신 속에도 깃들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으로 향로봉을 지키는 힘이 된다.
 
■12사단(을지부대)은?
 
1952년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창설. 66년 현 위치인 인제군 원통으로 이동. 한국전쟁 당시 연천지구 전투와 중공군의 최후 공세 때 854고지 전투에서 사단 최초로 승리를 거두어 우리나라에 유리한 휴전협정이 되도록 결정적 구실을 함.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때에는 잔당 2명을 사단 책임 지역 내에서 사살. 창설 이후 현재까지 총 9회의 대통령 부대 표창 수상. 을지부대라는 부대 애칭은 고구려에서 만주벌판을 누비던 을지문덕 장군의 기상을 이어받으라는 의미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명명. 사단 작전 지역은 85%가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해발 고도 1000m 이상의 고지만 49개소에 달하는, 동부 전선 최고의 요충지임.
 
■향로봉은?
 
1293m의 높은 고지에 구름이 덮이면 향로에 불을 피워 놓은 형상으로 보인다 하여 향로봉이라 한다. 맑게 갠 날에는 금강산 비로봉과 고성 적벽강이 흐르는 모습은 물론 해금강 만경창파가 넘실거리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산이다.

한국전쟁 때에는 1951년 6월 3~12일 향로봉 일대에서 수도사단이 북한 13사단 공격을 격퇴했다. 이 일원에는 동물 1526종, 식물 1만 1013종이 서식하며 반달가슴곰·황조롱이·어름치 등의 천연기념물과 노란만병초·눈촉백 등의 희귀 식물이 자라고 있다.